[Press][자율주행 분야의 딥테크 강자들] 정지성 에스오에스랩 대표

한국 라이다 센서의 선두 주자 


동아리방에 모여 있던 라이다 기술 박사들이 창업을 결심했다. 이 스타트업은 창업 4년 만에 한 시장조사기관으로부터 글로벌 4대 라이다 기업으로 꼽혔다. 내친김에 수백만원 하는 센서 가격을 10분의 1로 낮추고, 성능도 확 올려 라이다 센서의 세계 기술 표준이 되겠다는 야심도 밝혔다.

▎에스오에스랩은 올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 온세미컨덕터와 자동차·스마트팩토리용 라이다 기술을 공동 개발해 양산하기로 했다. 정지성 대표가 에스오에스랩 라이다로 외부를 촬영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SF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동굴 탐사에 ‘옵저버’란 드론이 나옵니다. 이 원형 드론은 동굴 곳곳을 돌면서 레이저를 쏘고 실시간으로 3D 맵을 구성해 우주선에 전송하죠. 아무리 영화적 상상이라고 해도 빛도 없고, GPS가 잡히지 않는 동굴에서 라이다 기술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한 최고의 장면으로 꼽습니다.”

지난 9월 15일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한 정지성(34) 에스오에스랩(SOS LAB) 대표는 라이다 기술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에서 거의 유일한 라이다 업체인 에스오에스랩은 지난해 센서 시장조사기관 LED인사이드가 선정한 전 세계 경쟁력 있는 4대 라이다(LiDAR) 제조업체 중 하나다. 벨로다인(Velodyne Lidar), 쿼너지(Quanergy), 이노비즈(Innoviz) 등 세계적인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에스오에스랩은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에서도 화제였다. 올해로 세 번째 참가하는 이 행사에서 2019년 혁신상을 받았고, 올해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온세미컨덕터와 업무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 내용을 보면 자동차·스마트팩토리용 라이다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온세미컨덕터의 칩을 가지고 상용화한 제품을 2023년부터 양산한다는 내용이다. 2016년 광주과학기술원(GIST) 연구원 4명이 설립한 이 회사는 불과 4년 만에 세계 정상급 라이다 회사가 됐다. 정 대표는 “온세미컨덕터와 손잡으면서 차량의 전조등, 범퍼에 내장할 차랑용 라이다를 본격적으로 대량생산 할 기회를 맞았다”고 고무돼 있었다.

그의 기대처럼 라이다 기술로 완전 자율주행차 시대가 곧 열릴 것만 같다. 라이다는 카메라, 전자파에 기반을 둔 레이더의 단점을 보완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레이저를 이용해 악천후에서도 빠르게 주변 환경을 인식하고,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입체 지도’를 만들 수 있어 레벨 3~4 수준의 자율주행엔 필수라 여겨진다. 하지만 현재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은 라이다 도입에 소극적이다. 단적인 예로 테슬라의 전기차 모델 3의 오토파일럿 기능은 라이다 센서 대신에 카메라 8대, 초음파 센서 12대, 레이더 1대를 사용한다. 한술 더 떠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라이다는 헛수고”라며 폄하했다. 레이더와 카메라보다 10배 넘게 비싼 가격 탓이다.

에스오에스랩은 테슬라의 혹평에 맞서 라이다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인식률은 높이고 저렴하면서 작게 만들겠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차량 지붕, 전조등, 앞쪽 범퍼나 사이드미러, 프런트 그릴 등 차량 어디에나 쉽게 설치할 수 있다. 기술력도 인정받았다. 올해 상반기 특허청은 최고 특허기술로 에스오에스랩의 라이다 센서를 선정해 세종대왕상을 수여했다. 이제 글로벌 파트너와 손잡고 본격적인 양산을 검토하는 일만 남았다.

자금도 몰린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액 200억원을 넘어섰다. 2017년 퓨처플레이의 2억원 시드 투자를 시작으로 2018년 만도가 주도한 시리즈 A 투자에서 68억원을 유치했다. 올해 코로나19 상황임에도 한국산업은행(KDB)의 투자를 시작으로 98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지난해 7월엔 신용보증기금의 ‘제1기 혁신 아이콘’으로 선정돼 최대 100억원의 추가 투자금을 유치할 기회도 얻었다. 광주과학기술원에서 소형 라이다 센서 테스트 중인 정 대표가 떠올리는 창업 동기는 이랬다.

창업 4~5년 만에 글로벌 업체로 거론된다. 어떤 계기로 창업했나.

지금도 얼떨떨하다. 2015년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레이저 센서 기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자율주행 분야는 사실 엄두를 못 냈다. 돈도 많이 들고, 자동차 양산까지 가려면 요원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그해 ‘한국형 공공기술기반 시장연계 창업탐색 지원사업(I-Corps, 아이코어)’에 선정돼 미국으로 창업 교육을 떠났다. 이듬해 6월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를 만난 뒤 에스오에스랩 창업 의지를 굳혔다. 맨땅에 헤딩할 뻔했으나 류 대표 덕분에 미국 라이다 회사를 두루 만날 수 있었고, 라이다 센서 개발에 필요한 자금 규모와 개발 방향을 가늠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뭘 봤나.

처음엔 한미 간 괴리감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8주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창업 위탁교육을 받았다. 고객 100명을 만나 창업 가설을 검증하는 ‘커스터머 디스커버리’라는 과정이었는데 시장에 나가서 창업 결정을 내리란 뜻이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았지만 고객을 만나 인터뷰했고 미국 스타트업 시장을 좀 더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창업하려는 천재들이 수두룩했고,수천억원씩 투자받는 스타트업도 숱하게 나와 한국 시장과는 뭔가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 약간 자포자기(?) 상태로 있었다.

왜 자포자기했나.

라이다 관련 기술만 15년 넘게 연구해왔으니 사실 미국 소식을 모를 리 없었다. 벨로다인, 쿼너지, 이노비즈 같은 글로벌 라이다 회사는 막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연구개발은 물론 상용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솔직히 한국에서 그런 자금을 유치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류 대표를 만난 후 그의 소개로 미국 업체 관계자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들이 수천억원으로 만든 제품을 보니 난 2억~3억원이면 기초 프로토 타입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류 대표를 찾아가 양산까지 가는 데 200억원 정도면 충분하겠다고 말했더니 투자 유치를 돕겠다고 했다. 실제 퓨처플레이에서 받은 시드 자금으로 전방 장거리용 하이브리드 스캐닝 라이다 ‘SL-1’ 시제품을 CES 2018에 출품했다. 성능만 보면 1000억원 이상 투자받은 회사 제품에 꿀릴 것이 없었다.

“라이다 센서, 대당 50만원 이하로 낮춰야”

▎자율주행차용 라이다 제품으론 전방장거리용 SL-1과 후측방 근거리용 ML-1이 있다. 이 밖에 공장자동화용 AGV, 드론·산업용 GL- 3, 근거리(5~10m)를 감지하는 TL-3 라이다 제품 등도 있다.


라이다 기술이 그렇게 우월한가.

자율주행 기술엔 크게 카메라, 레이더, 라이다 센서가 자리하고 있다. 센서 기술의 장단점은 있지만, 우위를 가리는 건 의미 없다. 궁극적으로 더 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선 3가지 기술을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산업적으로 단기, 중기, 장기 측면에서 도입 추세를 구분해 대응하는 것으로 족하다. 레벨 2~3(부분자율주행) 수준인 경우 제조사는 카메라와 레이더를 활용하는 쪽으로 먼저 가닥을 잡는다. 가격이 더 저렴해 프리미엄 차량에서 일반 차량으로 확대 적용된다. 레벨 3~4(준 완전자율주행)급으로 가면 라이다 채택도 거의 필수다. 차량 부품화(내구성, 소형화 등)가 선행돼야 하고, 최적화된 솔루션도 개발해야 한다. 우리는 라이다 센서 전문 기업이라 특화된 애플리케이션 개발은 서울로보틱스와 협업하고 있다.

일단 제조사는 라이다보다 카메라와 레이더를 선호하는 것 같다.

가격 때문이다. 2006년 구글이 자율주행차 웨이모에 라이다 센서를 달았을 때 대당 센서 가격은 1억원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수백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에선 라이다 센서 양산가가 200만원 밑으로 낮아져야 도입을 검토해볼 판이다. 현재 레벨 2 수준의 자율주행에 쓰는 레이더와 카메라는 대당 10만원대다. 우리가 내년에 선보일 완전 고정형(솔리드 스테이트) 라이다 제품이라면 대당 양산가를 최대 50만원 이하로 낮출 수 있다. 차량 한 대에 4대를 달아도 200만원이 안 된다.

라이다 센서를 단 양산형 차량이 있나.

있긴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 양산형 모델 가운데 카메라·레이더·라이다 3종 센서를 모두 장착한 건 아우디 ‘A8’뿐이다. 프랑스 부품업체인 발레오의 2세대급 라이다 센서 스칼라를 적용했다. 최대 145도의 수평 시야를 제공하는 대신 4채널에 불과해 해상도나 성능엔 한계가 있다. 정확한 가격은 알 수 없지만, 꽤 고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린 아우디 A8에 탑재된 센서와 같은 크기임에도 32채널 이상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 현대차도 내년에 출시할 G90 풀체인지 모델에 카메라와 레이더 외에 2개 라이다를 추가한 레벨 3 자율주행 시스템을 장착한다고 들었다. 자동차 업계에서 라이다 보급에 탄력이 붙을 수 있고, 우리 라이다 센서를 선보일 기회가 많아질 것 같다.

어떤 제품이 경쟁력을 지녔다고 생각하나.

기술과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우리가 개발한 하이브리드 스캐닝 라이다 ‘SL-1’은 말 그대로 두 가지 방식의 장점을 합쳤다. 라이다 업계에서 많이 쓰는 모터 방식과 미세전자제어기술인 멤스(MEMS) 방식을 같이 썼다. 수평 감지의 경우 기계식 모터 회전 방식으로 넓은 시야각을 확보했고, 수직 감지엔 작은 반사형 미러가 움직이는 방식을 써 양산에 더 적합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자동차 전조등에 넣을수 있을 정도로 작고 싸게 만들 수 있다. 15년, 30만㎞ 주행에도 끄떡없는 내구성도 갖췄다. 미국 벨로다인사의 주력 제품은 모터 회전 방식을 쓰는데, 가격도 비싸고 내구성이 떨어진다. 이스라엘 회사 이노비즈도 중국 투자를 받아 3D 라이다 개발에 성공했지만, 비슷한 단점이 있다. 최근 미국 벨로다인사가 카피 제품을 만든 중국 회사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기술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졌다.

투자금은 주로 어디에 썼나. 개발한 제품도 소개해달라.

주로 연구개발, 제품화, 특허 확보에 쓴다. 임직원 40여 명 중 30명이 연구개발(박사급 11명) 인력일 정도로 인재 확보에 많은 공을 들인다. 이들이 4년 동안 머리를 맞댄 끝에 SL-1, ML-1, GL-3, TL-3, AGV 등 총 5가지 제품을 보유할 수 있었다. 자율주행차용으로는 전방장거리용 SL-1과 후측방 근거리용 ML-1이 있다. 현재는 자율주행을 연구하는 기업과 대학 연구소가 구매한다. 자율주행 차량 외에도 공장자동화용 AGV, 드론·산업용 GL-3, 지하철 스크린도어나 근거리(5~10m) 장애물을 감지하는 TL-3 라이다 제품도 있다.

가장 기대를 거는 제품은 뭔가.

완전 고정형 라이다 센서인 ML-1이다. 아이폰의 얼굴 인식에도 사용되는 ‘빅셀(VCSEL)’이라는 레이저 광학 기술을 활용했다. 즉, 흔히 쓰는 0.5~1m 근거리용 센싱 기술에 레이저 기술을 더해 200m까지 인식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완전 고정형 제품은 기존 모터 회전 방식과 달리 회로기판에 반도체를 올리는 방식이라 값싸면서 손바닥에 올릴 정도로 작고, 내구성도 강하다. 충격에 강한 플래시 메모리 형태를 떠올리면 쉽다. 전조등이나 깜빡이, 후미등에 달 정도로 작은데 후진 중에 장애물을 감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형상까지 알려준다. CES 2021에 내놓을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 탓에 무산돼 제품을 공개할 다른 방법을 고민 중이다. 이 제품이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가면 라이다 시장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산업용, 공장자동화용 라이다 제품은 어떤가.

분명 시장엔 니즈가 있다. 최근 부산항만공사와 보안 모니터링 시스템 구매조건부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보안 모니터링 시스템에 라이다를 활용하면 정교한 사물인식이 가능해 항만 사고를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 공장자동화용 라이더의 경우 국내 반도체 설비 납품업체와 반도체 공장 내 웨이퍼 이송 장비(OHT)의 장애물 감지용 라이다 센서도 개발했다.

에스오에스랩이 어떤 회사가 되기를 바라나.

벨로다인·이노비스·쿼너지 등 글로벌 업체를 완전히 넘어서는 게 우리 목표다. 실제 라이다 분야에선 세계 표준 기술이 없다고 봐야 하기에 가격과 기술 경쟁력을 갖춘다면 표준 기술을 선도할 수 있다. 글로벌 제조사와 양산 프로젝트까지 성공한다면 앞으로 자율주행차 시장은 더 빠르게 커질 거다. 우리는 2023년쯤 라이다 센서의 개당 가격을 지금의 20% 수준으로 낮출 계획이다. 앞서 소형 라이다 센서 가격을 50만원대라고 했지만, 이른 시일 내에 20만원 미만으로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모빌리티 시장뿐만 아니라 스마트 인프라 전반에 라이다 기술이 쓰일 날을 꿈꾼다.

- 김영문 기자 ymk0806@joongang.co.kr·사진 장정필 객원기자